본문 바로가기

J.Bo's Blog/경제 상식 키우기

[교양경제학]시간은 얼마에 살 수 있나?


금융과 투자의 세계는 왜 늘 그토록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질까? 정글 같은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과 원리를 일상의 언어로 알기 쉽게 풀어 쓸 수는 없을까? ‘정글경제의 원리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 칼럼이다. 이 칼럼은 족집게 투자 예측이나 재테크 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위험하지만 피할 수 없는 금융과 투자의 정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장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를 차근차근 설명하려 한다. 또한 이 분야의 지배적인 이론과 그에 대한 비판을 소개함으로써 석학들의 통찰을 나눠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날이다. 릴케는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마주했다. 17세기 영국 시인 로버트 헤릭은 뭇 소녀들에게 충고했다.

장미꽃을 딸 수 있을 때 모아라. / 시간은 쉼 없이 날아가는 것 / 오늘 미소 짓는 이 꽃도 / 내일이면 시들어가리라.’

18세기 독일작가 프리드리히 폰 쉴러는 미래는 느릿하게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멈춰서 있다.” 고 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시간이 쏜 살같이 날아간다거나 강물처럼 흐른다는 관념에 의문을 품었다. 과거•현재•미래를 나누는 것조차 환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임을 보였다.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두 사람에게 현재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시간의 의미를 알면 금융의 신비를 벗길 수 있다.

 

시간의 의미를 찬찬히 되새기는 이들은 누구나 금융경제학자와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정글 같은 금융과 투자의 세계에서 부딪히는 숱한 문제를 풀어 줄 가장 중요한 열쇠는 시간 속에 감춰져 있다. 다행히도 금융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시간은 시인이나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말하는 시간보다 덜 추상적이다. 그만큼 덜 난해하다. 시간이라는 변수를 포함한 수식을 풀자면 컴퓨터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측정할 수 있고, 계산할 수 있는 시간을 이야기한다. 규칙적이고 정형화된 시간을 다루는 것이다.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시간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금융의 정글에서 미래는 늘 불확실하다. 그래서 위험하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한 현재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같은 돈이라도 먼 훗날보다는 바로 지금 쓸 수 있을 때 더 큰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같은 100만원을 지금 당장 받고 싶은지 1년 후에 받고 싶은지 물어 보면 누구나 지금 당장 받기를 원한다. 미래의 100만원보다 현재의 100만원에 얼마나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할지는 사람의 시간선호(time preference)가 얼마나 강한지에 달려있다. 어떤 개인이나 사회의 시간선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미래가 더 불투명하고 위험해 보일수록 사람들은 현재에 더 많은 가치를 두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돈을 빌리는 이들은 빌려주는 이들(미래 소비를 위해 현재 소비를 기꺼이 포기하고 기다리려는 이들)에게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말 시중금리(회사채 수익률) 31%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기업이 100억원을 빌리려면 한 해 이자로 31억원이나 물어야 했다. 그 때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앞날이 어둡고 두렵던 때였다. 하지만 5년 후 이 금리는 3.7%까지 떨어졌다. 이 정도 이자만 받고도 기꺼이 돈을 빌려줄 만큼 미래보다 현재를 선호하는 정도가 급속히 약화됐다.

 

미래에 받을 돈은 지금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화폐의 시간가치(time value of money)라는 개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돈의 값어치가 어떻게 달라질지 따져보기 위한 것이다. 화폐의 시간가치는 이자율로 알 수 있다. 돈을 빌리는 이들과 빌려주는 이들이 주고받는 이자를 알면 지금 가진 돈이 훗날 얼마나 불어나 있을지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재규어씨는 지금 100만원을 들고 있다. 이 돈은 지금 쓸 수도 있고, 이자를 주는 이에게 빌려줄 수도 있다. 금리가 5%라면 재규어씨가 빌려준 100만원은 3년 후에는 115.76만원, 30년 후에는 432.19만원이 된다 


미래가치(future value)는 이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게 바로 복리의 마술(magic of compounding)이다. 이때 금리가 10%로 뛰면 어떻게 될까? 재규어씨가 들고 있는 100만원은 3년 후에 133.1만원, 30년 후 1,744.94만원이 된다. 거꾸로 미래에 받을 돈이 지금 얼마의 가치를 갖는지 계산하는 것은 조금 더 복잡하다. 재규어씨가 1년 후에 받을 100만원의 현재가치는 얼마일까?

당연히 100만원보다는 적을 것이다. 얼마나 적은지는 금리 수준에 달려있다. 금리가 5%라면 3년 후 받을 100만원은 지금 86.38만원, 30년 후 받을 100만원은 지금 23.13만원의 가치가 있다.

 


이는 미래에 받을 현금을 ‘5% 수익률로 할인(discount)’해 현재가치를 구하는 셈법이다. 여기서 할인율(discount rate) 5%이다. 가까운 미래보다 먼 훗날 받을 돈의 현재가치가 적은 것은 당연하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돈의 값어치가 상대적으로 커지는 골치 아픈 상황은 나중에 생각해보자.) 이 때 할인율을 10%로 높이면 어떻게 될까? 재규어씨가 3년 후에 받을 100만원의 현재가치는 75.13만원, 30년 후에 받을 100만원은 지금 5.73만원의 가치밖에 없다. 이처럼 할인율에 따라 현재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현재가치를 구하는 셈법으로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

 

미래 현금흐름(future cash flow)을 할인해 현재가치를 구하는 셈법으로 참으로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 심지어 재규어씨의 몸값도 이런 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정글전자에 들어간 재규어씨가 25년 동안 매년 5,0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고 하자. 할인율[k] 5%라면 그가 받는 연봉의 현재가치는 얼마일까? 이는 매년 일정액[PMT]을 받는 연금의 현재가치(present value of an annuity) [PVAn]을 구하는 식과 같다. 


  25
년 후 퇴직금 1 5,000만원을 따로 받는다면 그 현재가치는 4,429만원이다. 재규어씨가 정글전자에서 얻는 소득의 현재가치는 모두 7 4,898만원이 된다. 할인율을 7%로 올리면 재규어씨가 받을 25년치 연봉의 현재가치는 5 8,267만원, 퇴직금의 현재가치는 2,763만원으로 준다. 이처럼 시장금리가 오를수록 재규어씨의 몸값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채권 값을 매길 때도 똑 같은 셈법을 쓸 수 있다. 여러 차례에 나눠 받을 이자의 현재가치와 마지막에 돌려받을 원금의 현재가치를 더하면 된다. 안정된 소득을 얻는 월급쟁이라면 그의 미래 현금흐름은 채권의 현금흐름과 비슷하다. (‘존엄한 인간을 한낱 채권에 비교하다니하면서 나무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금융의 정글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값을 매긴다.)

상환기간까지 남은 기간이 길면 길수록 금리변동에 따른 채권 가격 변동폭도 커진다. 마찬가지로 은퇴가 가까운 이들에 비해 젊은이들의 몸값이 금리변동에 더 크게 변동할 것이다. 어떤 회사가 주는 배당금의 현재가치를 모두 더해 그 회사의 주식 값을 구할 수도 있다. 첫 해 주당 배당금 [D1] 1,000, 매년 배당성장률 [g] 5%로 일정한 회사를 생각해보자. 이 회사는 영원히 존속하고 배당은 끊임없이 지급된다고 하자. 할인율 [k] 7%라면 배당할인모형(dividend discount model : DDM)으로 계산한 현재 주가 [V0] 5만원이다.

 

이 식은 할인율이 커질수록 주가는 떨어지고, 성장률이 높을수록 주가는 오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가치를 계산할 때 할인율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는 금융경제학, 특히 투자론의 핵심 질문이다. 미래에 수익을 내는 자산의 현재가격을 알아내려면 먼저 할인율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규어씨가 경영학 석사(MBA)출신이라면 할인율은 무위험수익률(risk-free rate)에 위험프리미엄(risk premium)을 더한 것이라는 틀에 박힌 대답을 할 것이다. 무위험수익률은 안전한 자산에 투자했을 때 얻는 수익률, 위험프리미엄은 안전하지 않은 자산에 투자한 대가로 얻는 추가적인 수익률이다. 그가 MBA라는 것을 뽐내려고 늘 들먹이는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M : Capital Asset Pricing Model)이라는 것도 자산의 미래 현금흐름을 할인해서 현재가치를 구하기 위한 이론적 틀일 뿐이다. (재규어씨는 CAPM캡엠이라고 발음해 더욱 배운 티를 내려 할지도 모른다.) 자산의 현재가치를 계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론적인 모형들은 결국 불확실한 미래 현금흐름의 기대치를 할인해 현재가치를 구하는 기본 식  의 다양한 변형으로 나타낼 수 있다.

현재가치니 할인율이니 하는 시간을 내포하는 말들은 금융과 투자의 정글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일상 언어다. 이런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정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금융의 정글에서 시간의 의미를 쫓다 보면 언젠가는 짙은 포도주 속에 마지막 단맛이 스며들 때를 기다릴 줄 알게 될 것이다. 시들기 전에 장미꽃을 따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될 것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이면 한 발 앞서 미래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